애플 마케팅은 강력하다.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잡스의 'Think Different' 캐치프레이즈 프레젠테이션이라던지, 맥북 에어와 아이폰의 첫 공개 프레젠테이션같은 것 말이다. 감탄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갓 출시 당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들었던 AirPods의 광고로도 이어볼 수 있다. Marian Hills의 Down을 이 광고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학교 가기 전 아침을 먹으며 처음 이 광고를 봤고, 난 그날 하루종일 수업 내내 이 광고만 생각했다. 에어팟은 정작 아주 조그마하게 나오는 광고이지만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정확했다. 애플 마케팅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다.
이러한 애플의 광고에 더해 애플의 마케팅에는 한국을 비롯한 비영어권 국가들에는 추가적인 무기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초월번역이다. 흔히 헐리우드 영화의 한글 자막을 놓고 원어의 대사보다 더 맛깔나게 표현하는 경우에 그렇게 부르는데, 애플의 마케팅에도 초월번역이 큰 역할을 한다.
가장 애플스러운 번역을 사진 예시로 가져왔지만 이 번역 이외에도
Welcome to the big screens -> 보다 큰 세상으로의 초대
The only thing that's changed is everything -> 달라진 것은 단 하나, 전부입니다
등 수도 없이 많다.
서론이 다소 길었지만 어찌 되었든 캐치프레이즈와 광고멘트는 언제나 사람들이 제품을 인식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짧게 이미지를 심어주는 도구이자 마케팅 무기이다. 심지어 제품은 물론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역할을 지닌다.
이러한 면에선 무인양품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무인양품의 '루이보스 검정콩차'를 너무 좋아하기에 시간이 될 때마다 무인양품을 찾곤 한다. 물론 가서 검정콩차 이외에도 다양한 물건들을 사오게 되는데, 주로 예상에 없었고 즉흥적으로 사게 되는 것들이다. 특히 '메이플 시럽 쿠키'나 '딸기 초콜릿'은 생긴 것부터 맛있게 생겨서 사지 않으면 집에 가서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무인양품에서는 언급한 식품류 이외에 다양한 생활용품과 의류 그리고 가구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루이보스 검정콩차'는 천원가량이면 살 수 있는 데 반해 가구류는 일룸이나 한샘같은 국내 가구 브랜드는 물론이요, 수입 가구 브랜드 뺨을 치는 가격대다. 그렇다고 해서 품질이 매우 뛰어난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평범한 퀄리티이고, 디자인도 정말 너무 평범해서, 그 어느 인테리어 컨셉에 붙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이러한 점들이 장점이 될 지도 모르겠으나 말이다.] 의류의 경우 일본의 SPA 브랜드 유니클로와 비슷한 품질임에도 살짝 더 높은 가격대에 있다. 그렇다 보니 과연 누가 무인양품 제품을 구매할까 싶기도 하나, 그들의 마케팅에 한번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 그 가격이 합리화가 되어버린다. 합리화의 과정에서 마케팅의 위력이 드러나는 것이다. 예시들은 다음과 같다.
'지구에게도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기분 좋은 생활]의 실현' 이란다. 난 도대체 저런 문구가 옷을 파는 데 왜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암튼 인간적이고, 따뜻해보인다. 저 티셔츠를 입으면 꼭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여름 기획전에 사용된 문구다. 무슨 특별전 문구 따위가 내 삶의 애환을 이해하고 달래주려 한다. 그것도 막 가볍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다소 오지랖 넓은 것 처럼 들리지만 말이다.
아아, 흰 배경에 흰 글씨라니. 가독성은 최악이지만 문구는 진심이다. 휴식이 더 넓어졌다니. 휴식을 시간적 개념이 아닌 공간적 개념으로 생각하고 문장에 사용했다. 덕분에 자신들의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하는 쇼파 겸 침대를 돌려돌려 자랑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그닥 편하게 휴식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이렇듯 무인양품에서는 무덤덤하지만 꽤나 무게감 있는 문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특히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에서 큼지막한 보드에 특유의 고딕체로 적혀있는 문구들을 보고 있자면 무인양품의 컨셉에 매료되는 걸 막기란 쉽지 않다. 특히 매장의 음악과 함께라면 어느샌가 충동적으로 물건을 쓸어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과 달리 무인양품의 문장은 일본어 문장을 직역한 느낌이 다소 강하다. 그래서 마케팅을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쉽게 풀어쓸 수 있는 멘트들을 베베 꼬아서 그저 뭐라도 좀 있어보이는 것 처럼 표현해 거부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문제다. 민낯 얼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풀메이크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왜 없는 살림에 카드로 풀할부를 돌려 명품으로 혹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예쁜 옷으로 치장을 하는 지 생각해보자. 그 행동이 합리적이라서, 혹은 경제적이라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꾸미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광고문구들도 똑같다. 얼마든지 제품을 훨씬 명료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흰티에 청바지라고 언제나 정답인 게 아닌 것 처럼. 무인양품을 비롯한 여러 기업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제품을 홍보한다.
약간은 진솔한 면에서, 그리고 약간은 과장된 면에서 제품을 홍보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오늘은 간단하게 무인양품의 문구들을 나열해봤는데, 어째서인지 애플 이야기가 주가 되고, 무인양품이 서브 스토리로 전락한 것 같으나 분량 조절 실패로 남겨두고 여기서 스크리블링을 마무리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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